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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인슈타인과 마릴린 먼로

이미 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됐지만 아인슈타인과 마릴린 먼로가 생전에  데이트를 하며 친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마릴린 먼로는 아인슈타인에게 청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박사님의 두뇌와 저의 육체가 합쳐지면 우리 사이에 태어나는 자식들은 세계 최고의 두뇌를 가진 세계 최고의 미녀나 미남일 것입니다.”   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인슈타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이 먼로양,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구먼.  만약 당신의 두뇌와 내 육체를 닮은 아들이나 딸이 태어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러우면서 가장 못생긴 아들이나 딸이 태어날 것이오”라고 대답해 결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이 내용은 누군가가 유머로 만들어 낸 얘기다. 관점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다. 조선의 시조 이태조가 왕이 된 다음 무학대사를 궁으로 불러들여 국정 자문을 하도록 했다. 두 사람은 장기를 두면서 소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날 장기를 한참 두는 도중에 이태조는 느닷없이 짓궂은 장난기로 이렇게 물었다.   “대사, 내 눈에는 당신 얼굴 모습이 꼭 미련한 돼지같이 보이는 데 당신 눈에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는가.” 기분이 상한 무학대사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제 눈에는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이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이태조는 또다시 “다 같은 사람의 눈인데 어찌하여 내 눈에는 당신이 돼지로 보이는 데 당신 눈에는 내가 부처님으로 보이는가.” 하고 반문했다. 그제야 긴장을 풀고 웃음 띤 얼굴로 무학대사는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돼지의 눈에는 돼지밖에 안 보이고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밖에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학대사 본인은 부처님이고 이태조는 돼지에 불과하다는 대답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 대답에 이태조는 꿇어앉아 자기의 잘못을 크게 사과했다는 에피소드가 조선야사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한 마디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두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 빌립보 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쉬임없이 믿고 바라고 입으로 시인하며 살 때 주 안에서 우리들의 꿈이 이루어 질 줄 믿는 것이다.   미국의 갑부인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매사에 임했을 때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유명한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 최대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가 못했다. 그가 55세가 됐을 때 1년 밖에 못 산다는 의사 진단을 받고 휠체어를 타고 가는 데 병원 로비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란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살펴보니 딸의 입원비를 내지 못한 여성이 병원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었다.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입원비를 대납했고 나중에 그녀의 딸이 기적적으로 완쾌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얼마 후 록펠러도 병으로부터 완쾌가 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98세까지 살면서 선한 일에 힘썼고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록펠러가 병원 로비에서 읽었던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성경 말씀으로 사도행전 20:35절에 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말씀의 기초 위에서 세워진 미국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마음이 뿌듯한지 하나님께 또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좌절하려면 끝없이 좌절할 수 있는 환경에서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로 최선을 다했을 때 성공한 사례들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에 무수한 사례들을 볼 수가 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도 그런 예다. 그는 1923년 9월 16일 출생하여 35세에 혜성처럼 싱가포르 정계에 등장했다. 그는 빈사 상태의 싱가포르를 20여년 만에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부유한 국가로 성장시킨 지도자다. 그도 하면 된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신념을 갖고 업무를 추진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능력을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 위대한 잠재능력을 잠재우고 있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잠재능력을 긍정의 힘으로 일깨워 100% 능력을 발휘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고 염원해 본다. 김수영 / 수필가수필 아인슈타인 마릴린 마릴린 먼로 하나님 말씀 뿌듯한지 하나님

2024-01-18

신약의 인물 탐구: 바리새인(Pharisee)

 복음서를 읽다 보면 ‘바리새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주로 등장하는 경우가 부정적인 역할로 나옵니다.오늘은 ‘바리새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리새인’은 ‘바리새파’의 사람입니다. 헬라어로 ‘바리새’는 히브리어의 ‘파라쉬’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뜻은 ‘분리된 자’, ‘구별된 자’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의 포로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합니다. 그런데 헬레니즘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서 신앙이 점점 세속화가 되어 갑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경건함으로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하시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 중에도 어떤 것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서 여러 분파로 나누어지는데, 그중에서 율법주의, 형식주의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과 전승을 중시하며, 사두개파와는 다르게 부활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복음서 당시에 바리새파는 아주 큰 세력을 형성한 종파였습니다. 이들은 형식주의, 율법주의에 치우쳐서 율법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문자적인 의미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이 바리새인이 복음서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곳은 마태복음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태복음 3장7절.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 때에 바리새인들이 세례요한이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독사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바리새인들에게 하십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12장34절. ‘독사의 자식’에서 ‘자식’은 ‘겐네마’로 ‘낳은 자, 자손’의 뜻입니다. 그래서 독사의 자식을 직역을 하면 태어날 때부터 뱀의 자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뱀은 ‘에키드나’로 ‘독이 있는 뱀’입니다. 독사는 독을 가지고 동물이나 사람을 물어서 죽게 만듭니다. 그래서 ‘독사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다른 사람의 신앙을 어지럽게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잘못된 내용, 자신들의 주장으로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내용으로 사람들의 지도자 자리에 있었습니다.         소위 성경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소경이 길을 인도하는 격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에서 아주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단순하게 성경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잘못된 길로 걸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기적과 사역하심이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꾸며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살인의 계획까지 꾸밉니다. 자신들만 왜곡된 신앙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마저도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며, 그들의 왜곡된 신앙처럼 잘못된 길로 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독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율법과 형식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며 사는 자들, 장로들의 전통과 전승을 고수하면서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자주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핍박과 박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나의 믿음이 ‘바리새인’과 같은 상태는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할 것은 다합니다. 지켜야 할 것은 다 지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는 인정받지 못한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목사인 저를 비롯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냉철하게 스스로의 믿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바리새인 신앙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선이며, 악인 지도 판단하지 못합니다. 사탄이 꾸민 거짓된 일이 진리인 줄 알고 좇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잘못된 길이 진리의 길이라고 말하며 안내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성경을 읽는다고, 기도한다고 모두가 참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주신 말씀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잘 분별할 줄 아는 제대로 된 믿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칼럼바리새인 pharisee 바리새인 신앙 하나님 말씀 형식주의 율법주의

20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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